반응형 전체 글35 행주산성 - 행주대첩, 권율장군과 숨은 공신 조경 행주산성행주산성은 원래 삼국시대 토성의 형태로 처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산 자체의 높이는 비교적 높지 않지만 주변이 한강과 평야로 연결되어 있어 적의 움직임을 넓게 감시할 수 있는 지형적 장점을가진다. 특히 산 정상부에서는 한강 유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수도 방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삼국시대 때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들이 매우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로 여겨 토성을 쌓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곳으로 삼국시대와고려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된 토성터가 있다.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에 위치한 덕양산은 임진왜란 3 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이 치러진 곳이다.한산대첩·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꼽히며 조선의 사기 회복과.. 2026. 5. 7. 남한산성 - 수어장대, 행궁, 청량대, 현절사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광주산맥 자락에 쌓은 성이다. 서울을 지키는 외곽에 4개의 산성을 쌓았는데, 북쪽의 송도,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였다. 백제 온조왕 13년에 산성을 처음 쌓고 남한산성이라 부른 후 역사의 풍랑 속에서 숱한 전란을 겪은 현장이기도 하다.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왕궁을 떠나 이곳으로 피난했었다. 당시 청태종은 10만 대군을 몰고 와 남한산성을 겹겹이 포위하고는 인조의 항복을 기다렸다. 성 안에서 대신들은 항복하자는 의견과 죽음으로써 맞서 싸우자는 의견으로 갈라져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나 강화도가 함락되고 두 왕자와 많은 아녀자들이 적의 포로가 되자 결국 인조는 남한산성에 피난한 지 45일 만에 성을 내려와 삼전도에서 치욕스러운 항복 의식을 치렀다. 현재 남아 .. 2026. 5. 6. 용주사와 융건릉 용주사수원에서 서남쪽으로 10km 떨어진 화성군 태안읍 송산리 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원래는 신라 문성황 16년에 '갈양사'란 이름으로 창건된 절이었으나 병자호란으로 불타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정조가 부왕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다시 지었다. 정조가 사찰 낙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묵고 있을 때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자 이를 비상하게 여겨 사찰 이름을 '용주사'라 지었다고 한다.건평이 60평이나 되는 큰 규모의 대웅전이 잇으며 독성각, 호성각, 명부전 등의 많은 전각이 있다. 국보 제120호로 지정된 용주사 범종, 정조가 하사한 금동향로, 청동향로 등이 있고 이 외에도 김홍도가 그린 탱화와 불교의 경전인 '부모은중경'이 있다. 1. 대웅전대웅보전은 불교 사찰에서 중심 법당에.. 2026. 5. 5. 수원 화성 -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 수원화성저선 제22대 임금 정조는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먼저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넋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양주 배봉산에 묻혔던 아버지의 묘를 지금의 화성군 화산으로 옮겼다. 그리고 매년 봄, 가을로 참배를 하다가 차라리 수원을 도읍으로 하여 궁궐을 옮길 결심을 하고 지은 성이 수원화성이다. 성의 정상에 오르면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산이 멀리 바라다보여 아버지의 능 가까이에 살고 싶어 도읍을 옮기려고까지 하였던 정조의 효심이 절로 느껴진다. 수원화성은 영의정 채제공의 총지휘 아래 정약용이 공사 과정을 계획 감독하였는데 정약용은 이 공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거중기를 사용하였다. 공사는 2년 반에 걸쳐 완성되었으나 완성될 무렵 정조가 병으로 죽는 바.. 2026. 5. 4. 조선왕조 5백년의 상징 궁궐 창경궁종로구 와룡 1동에 있다.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이 아버지 태종을 위해 지은 궁궐이다.고려시대에 수강궁이 있던 자리에 지어져 수강궁이라 불리다가 성종 14년에 궁궐을 새로 짓고 창경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선대왕들의 왕비인 정희, 소혜, 안순 왕후들이 살았다. 창경궁은 특히 일제시대에 수난을 많이 당한 궁궐이다. 일제는 나라일을 의논하던 궁궐인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 놀이기구를설치하여 놀이공원으로 만드는가 하면 왕이 산책하던 길에는 일본 국화인 벚나무를 심어 우리의 민족정신을 없애려고 하였다. 1. 옥천교 - 보물제386호정문인 홍화문과 명정문을 연결하던 옥천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다리이다. 2. 명정전 - 국보 제226호창경궁의 법전으로 임금이 신하들의 아침 인사를 받던 곳이다. 1484년(.. 2026. 5. 1. 서울의 성곽과 대문 그리고 궁궐 성곽과 대문 조선왕조 5백 년의 도읍이었던 서울은 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 등 네 산을 연결한 길이 17km, 약 40리에 달하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성이었다.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송도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듬해(1394년)부터 성곽을 쌓기 시작하였는데 태조는 '성곽은 나라의 울타리이니 포악함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터전이니라'하고 하여 성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그 성곽이인왕산 북동쪽과 북안산 일대, 낙산 등지에 비교적 제 모습을 잃지 않고 남아 있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도성 안팎을 통하는 문으로는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광희문, 혜화문, 숙정문, 창의문(자하문), 돈의문(서대문), 소의문(서소문) 등 8개가 있었다. 도성 8문은 지방에 사는 .. 2026. 4. 30. 이전 1 2 3 4 ··· 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