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우리나라 문화재4 행주산성 - 행주대첩, 권율장군과 숨은 공신 조경 행주산성행주산성은 원래 삼국시대 토성의 형태로 처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산 자체의 높이는 비교적 높지 않지만 주변이 한강과 평야로 연결되어 있어 적의 움직임을 넓게 감시할 수 있는 지형적 장점을가진다. 특히 산 정상부에서는 한강 유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수도 방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삼국시대 때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들이 매우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로 여겨 토성을 쌓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곳으로 삼국시대와고려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된 토성터가 있다.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에 위치한 덕양산은 임진왜란 3 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이 치러진 곳이다.한산대첩·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꼽히며 조선의 사기 회복과.. 2026. 5. 7. 용주사와 융건릉 용주사수원에서 서남쪽으로 10km 떨어진 화성군 태안읍 송산리 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원래는 신라 문성황 16년에 '갈양사'란 이름으로 창건된 절이었으나 병자호란으로 불타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정조가 부왕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다시 지었다. 정조가 사찰 낙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묵고 있을 때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자 이를 비상하게 여겨 사찰 이름을 '용주사'라 지었다고 한다.건평이 60평이나 되는 큰 규모의 대웅전이 잇으며 독성각, 호성각, 명부전 등의 많은 전각이 있다. 국보 제120호로 지정된 용주사 범종, 정조가 하사한 금동향로, 청동향로 등이 있고 이 외에도 김홍도가 그린 탱화와 불교의 경전인 '부모은중경'이 있다. 1. 대웅전대웅보전은 불교 사찰에서 중심 법당에.. 2026. 5. 5. 수원 화성 -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 수원화성저선 제22대 임금 정조는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먼저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넋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양주 배봉산에 묻혔던 아버지의 묘를 지금의 화성군 화산으로 옮겼다. 그리고 매년 봄, 가을로 참배를 하다가 차라리 수원을 도읍으로 하여 궁궐을 옮길 결심을 하고 지은 성이 수원화성이다. 성의 정상에 오르면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산이 멀리 바라다보여 아버지의 능 가까이에 살고 싶어 도읍을 옮기려고까지 하였던 정조의 효심이 절로 느껴진다. 수원화성은 영의정 채제공의 총지휘 아래 정약용이 공사 과정을 계획 감독하였는데 정약용은 이 공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거중기를 사용하였다. 공사는 2년 반에 걸쳐 완성되었으나 완성될 무렵 정조가 병으로 죽는 바.. 2026. 5. 4. 서울의 성곽과 대문 그리고 궁궐 성곽과 대문 조선왕조 5백 년의 도읍이었던 서울은 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 등 네 산을 연결한 길이 17km, 약 40리에 달하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성이었다.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송도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듬해(1394년)부터 성곽을 쌓기 시작하였는데 태조는 '성곽은 나라의 울타리이니 포악함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터전이니라'하고 하여 성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그 성곽이인왕산 북동쪽과 북안산 일대, 낙산 등지에 비교적 제 모습을 잃지 않고 남아 있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도성 안팎을 통하는 문으로는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광희문, 혜화문, 숙정문, 창의문(자하문), 돈의문(서대문), 소의문(서소문) 등 8개가 있었다. 도성 8문은 지방에 사는 .. 2026. 4. 30. 이전 1 다음 반응형